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본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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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참사랑병원작성일 : 15-01-15 13:45 조회 : 6,6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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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본 ‘미생’
인천참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하종은
정신과 의사의 당직은 고독합니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전화기는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곧 날아들 총알을 기다리며 참호를 지키는 보초병의 심정과 같다 할 것입니다.
최근 저는 고독과 긴장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에서 작은 즐거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며 이 밤을 버티는 일입니다.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여긴 버티는 게 일인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오상식 과장은 여러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팀의 일원으로 첫 발을 들인, 계약직 직원 장그래에게 비장한 환영 인사를 건넵니다.
바둑에는 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생이란 아직 완전히 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죽지도 않은 집을 일컫습니다. 한 수, 한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생사가 오고갑니다. 가까스로 취업의 관문을 통과해 꿈에 그리던 직장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장그래는 살아남지 못 했나 봅니다.
미생을 본 직장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 드라마에 공감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우리의 인생살이 자체가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신입사원의 면면을 살펴봅시다. 칭찬만 듣고 살아왔을 법한 모범생 장백기는 사회에서는 기초도 모르는 학생 취급만 당합니다. 우리도 현실에서 서툴렀고 많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안영미는 또 어떻습니까?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너무 잘났다는 이유로 주류 사회에 껴주질 않습니다. 팀원들과 융화되지 못 하고 도전하고 극복하려고만 하는 그녀에 대해 선배들은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융통성과 현장 적응력이 장점인 한상률은 자신보다 몇 배는 능구렁이 같고 노련한 선배를 만나 매일 골탕을 당합니다. 우리 역시 세상이 자신을 몰라주거나 사람들이 나를 이용만 하려고 해서 마음이 번잡스러웠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업의 간부들은 완생에 조금 더 가까울까요? 오상식 과장은 일에 있어서는 냉철한 승부사이고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선배입니다. 하지만 과거 후배의 죽음을 방치한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지 못 하고 일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고슴도치 같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늘 술에 의지해 인사불성이 되고 마는 그의 모습은 아슬아슬하게 느껴집니다. 선지영 차장은 고속 승진을 한 커리어 우먼입니다.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녀도 사는 게 참 힘들고 버겁습니다. 바쁘게 출근하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는 외롭고, 그렇다고 가정에서 까지 완벽한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녀는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죄인, 어른에게도 죄인,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라고 읊조립니다. 김부장은 승진과 월급이라는 샐러리맨의 특성에 최적화된 인물입니다. 그러나 기업의 부속물로 부하직원의 비리를 짊어지고 쓸쓸히 퇴장합니다. 미생이기는 정점에 있는 최전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전무가 오상식 과장을 경계하며 자신의 힘을 남용해 월권을 부리는 것은 그의 마음역시 불안감이 지배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완생이란 무엇일까요?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성숙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모은다고 높은 위치에 올라간다고 그 성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불안해하고 탐욕스럽게 변해버립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딱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회사에 끝내 입사하지 못 한 장그래의 인턴 동기들입니다. 그들은 좋은 학벌, 토익 점수, 인맥 등을 앞세워 장그래를 비웃고 따돌립니다. 장그래가 가지지 못 한 것과 자신들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자신들은 모든 것을 이룬 완생인냥 으스댑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미숙한 존재인지 아직 깨닫지 못 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우월해!”라며 오만해지는 순간 우리의 성숙 역시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장그래를 비웃던 입사동기들은 소리 소문 없이 입사에 실패하고 이 드라마에서 자취를 감춰 버립니다.
문득 인천참사랑병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구성원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누가 미생이고 누가 완생일까요?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자만하는 환우는 완생 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우울증이나 환청이 좋아져 퇴원을 앞두고 있는 환우가 완생 일까요? 아마 병원 생활을 성실히 하신 환우라면 퇴원 후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병을 치료한 후에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병을 극복함으로서 인생을 회복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사나 간호사들이 완생일까요? 의사인 저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습니다. 물론 전문의 면허를 따기 위해 필요한 교육은 모두 이수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병실에 치매를 진단 받고 누워계신 할아버님이 살아오신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 했습니다. 또한 그 분이 사셨던 치열한 역사는 책 속에서만 경험했습니다. 저는 왜 환우들의 마음이 아픈지 술에 의존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성숙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저의 스승은 환우분들입니다. 저는 틀림없이 아직 미생입니다.
보아하니 천영훈 원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장님이라고 모든 진리를 깨우치고 신선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저희 병원의 나아갈 방향과 현실 속에 부딪히는 난제들 사이에서 밤잠을 설치고 계십니다. 원장님도 아직 미생입니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 우리 모두에겐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주인공 장그래의 대사입니다. 아! 장그래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이 드라마의 주인공 장그래는 인생의 실패자로 처음 등장합니다. 바둑신동이었던 그는 모든 인생을 바둑기사가 되는 일에 올곧이 겁니다. 그러나 프로입단에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병져누웠으나 현실은 냉혹해서 어느 누구 하나 이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바둑 유망주 시절의 후원자 덕에 인턴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낙하산이라고 손가락질만 당합니다. 영어는커녕 기본적인 무역 용어도 모른 체 무역 회사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우둔하소 무모해 보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동영상으로 시청하는 탓에 아직 12회 밖에 보지 못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드라마는 16회까지 방영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드라마에 최후의 승자가 있다면 장그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누구나 노력을 하겠다고 하는데 노력을 하겠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지?”
라는 윗사람의 핀잔에 장그래는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을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장그래의 노력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취업을 하면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장그래의 노력이 다른 것은 그에게 절실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포기하고 희망 없는 밑바닥을 경험한 장그래입니다. 그는 직장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마치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모험처럼 여기고 정말 간절하게 노력하고 도전합니다.
바둑을 포기하며 그는 스스로를 버림받은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합니다. 우리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은 좌절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도전 앞에 장그래의 눈은 빛납니다. 그는 아마 무모한 도전을 하는 현재에서 과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아낼 것입니다.
정신과 문을 들어선 환우 누구나 절망하고 좌절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저 않는다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미 우리를 실패자로 낙인찍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직원들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결코 그들의 일에 비해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미생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생인 것에 희망을 품고 오늘 하루를 성숙을 위해 쓰느냐, 아니면 여기에서 성장을 멈추고 좌절하는데 익숙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미생이기에 절망할 권리가 있듯이 또한 희망을 품을 권리도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나의 바둑판에 놓는 한 수는 사생을 향해가는 절망의 여정일 수도, 완생을 꿈꾸는 희망의 여정일 수도 있습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그 이유는 드라마 속의 상처받고 모자란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성숙을 도우며 정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상식이 장그래를 위로할 때 우리도 위로 받는 것처럼 느낍니다.
모자란 사람들이 함께 지내다보면 서로 상처만 주고받기가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발견하면 비난하고 뒷 담화를 하기 십상입니다. 상대의 약점이 나의 장점이나 잇점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를 외롭고 지치게 합니다. 미워하고 질투하는 사이에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놓쳐 버립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아껴줘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완생을 꿈꾸는 미생이기 때문입니다. 모자란 사람들이고 채워갈 것이 많은 사람들이기에 서로 기대고 도울 수도 있고 위안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직원 분들과 환우 분들의 상처와 약점을 공감하겠습니다. 그리고 참사랑병원의 모든 미생들이 함께 극복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참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