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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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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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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참사랑병원

작성일 : 13-02-08 15:46 조회 : 5,691회

본문

나는 정신과의사다.

나는 내가 정신과 의사라는 것이 참 좋다.

하지만...

나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내 직업이 알려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입니다."

라고 말을 함과 동시에, 나는 이제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된다.

백화점에 쇼핑하던 손님에서, 학교에 아이 문제로 상담하러 간 학부형에서, 시장바구니 들고 장보던 아줌마에서 난 돌연 '선생님'이 된다.

갑작스럽게 앉혀지는 선생의 자리를 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게 정신과 의사로서 그에 준하는 상담료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내게 상담하는 것이 나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의 갑작스런 상담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 그들은 내게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답을 내 입으로 듣고 싶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둘째, 내가  말하고자 하는 최선의 답이 그들이 듣고자 하는 답이 아니면, 난 가차 없이 그들의 찌푸린 얼굴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답을 내가 읊조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동네 아줌마나 친구들이 위로해 주고, 동조해주는 것과는 격이 다른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왜곡되어 자리 잡을 것이기에 쉽게 잠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건 내가 살면서 참 많이 부딪히는 딜레마였다.

그러나 여기 이 책 나미야 할아버지를 통해 난 새로운 답을 얻었다.

상담을 해주는 잡화점에 장난기 어린 누군가가 30통이 넘는 편지를 같은 필적으로 넣었을 때 나미야 할아버지는 말한다.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횅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굼한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렁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돼"

상담의 내용보다 상담에 임하는 할아버지의 이 지지함이 이미 상담자를 치료하고도 남음이 있겠구나...

난 더 빛나는 기술과 더 마음을 홀리는 답변으로 상담해 주려고 했지, 상담자에 대한 진심과 간절함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나도 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깨달은 내용이 나미야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다들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자신이 원하지 않거나, 그 답으로 이해 닥칠 제반의 여러 문제들 때문에 확신을 얻고 싶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기적인 결정에 힘을 보태 주길 원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불륜의 끝을 지지해 주길 바란다. 어떤 사람은 자시니 나쁜 짓을 한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에 대해서 하는 억지 합리화를 동조해 주길 바란다. 난 어떻해야 하나?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상담글이 왔다.

임신한 여자의 상담 글이었다. 처자식이 있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고, 자신이 아이를 낳아도 그 남자는 이혼할 마음이 없어서 아이를 책임 지지 못할 것인데 자신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내용의 상담글.

자신은 불임의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에 아이를 지우면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고, 이 아이를 낳으면 아빠 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상담글.

나미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중요한 것은 태어나는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반드시 부모가 다 있어야만 행복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설령 남편이 있다고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겠다."

난 무엇을 고민했을까?

내가 진정 상담과 조언을 해주면서 걱정했던 것은 무엇일까?

난 내가 내일 일까지, 미래까지 모두 다 꿰뚫고 조언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인간은 아니었을까?

정말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내일 아주 아주 하찮고, 별 이미 없는 헛짓임이 밝혀진다 해도 그것은 의미 없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오늘 이 순간 난 행복한 꿈을 꾸면서 열심히 한 순간을 살았으니까

그래, 난 내 상담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그 마음을 읽어주고, 그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인정해 주면 된다.

중요한건,

아무리 이기적이고, 어떤 추악한 짓을 하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고 인정받으려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변화시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원하는 정답, '네가 옳다. 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넌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는 그 답을 들려 주었을 때, 그들은 진정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꼭 그렇지 않아요. 사실 내가 욕심을 과하게 부린 면이 없지 않아요. 내 잘 못이 커요."

그들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자신을 용서할 만큼 용감하지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을 읽어주고, 그를 위로해 주면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만들어 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난 일개 잡화점 할아버지 나미야 지를 통해서 진정으로 내가 가야 할 상담자의 사명에 대한 큰 지침을 선물로 받았다.

어떤 상담자의 어떤 상담도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귀한 소리이기 때문에 가장 진지한 마음으로 들을 것이며, 상담자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답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으로 풀어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의 현명한 나미야 할아버지가 가장 힘들어 했던 상담은 연애 상담이었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아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당연시 여겼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중매로 결혼을 했고, 혼례식 당일까지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연애 문제를 상담하겠다는 사람이 오히려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미야 할아버지에겐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나미야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 작은 공장에 다녔고, 그때 열 살 어린 여고생의 자전거를 수리해 주면서 서로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고생의 집은 상당한 자산가였고, 나미야 할아버지는 일개 기계공이었기에 둘의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고, 야반도주를하기로 결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야반도주 하기로 한 날 실패했고, 여고생의 아버지는 기계공을 해치치 않는 대시 잊어달라는 편지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

'부디 나를 잊어주세요'

이 쪽지를 기계공인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전하면서 여고생은 사랑하는 남자를 지킨 것으로 그들의 인연은 끝이 난 듯했다.

그리고 삼년 뒤 그 여고생의 동생에게 나미야 할아버지가 찾아간다.

꼭 이 편지만은 전해 달라고...

그 편지의 내용을 아버지가 읽어도 좋고, 동생이 읽어봐도 좋지만 꼭 그 여자가 읽을 수 있게만 해 달라고...

"미나즈키 아키코 님께

몇 자 적어 올립니다. 갑작스럽게 이런 모양새로 서찰을 보내게 된 점, 부디 양해해주십시오. 우편으로 보내면 안에 든 서찰을 읽지 않은 채 그대로 처분해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아키코씨, 건강하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삼 년 전에 구스노키 기계 회사에서 근무하던 나미야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제는 잊어버리고 싶은 이름인지도 모르겠으나 부디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번에 펜을 들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꼭 한마디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은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타고난 성정이 유약한지라 막상 결심을 하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아키코씨 그때 일은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제가 저지른 짓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제야 세상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직 여학생 신분이던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불측하게도 가족 여러분과의 인연마저 끊기게 할 뻔 했던 것은 돌아보면 참으로 큰 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도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때 당신이 마음을 바꾼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의 설득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한다면 저는 당신의 부모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를 참에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당신을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짧은 나날이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가운데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당신에게 사죄하지 않은 날도 없습니다. 그때의 일이 당신 마음에 큰 상흔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아키코씨, 부디 행복하게 살아 주십시오. 제가 지금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쪼록 좋은 인연을 만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미야 유지 올림."

이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그 상대가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해하거나 상대가 오해할까바 걱정하고 힘들어할 것을 염려해서 이 편지를 꼭 전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아름다워서 울고 또 울었다.

나미야 할아버지 중매로 결혼하고, 결혼한 날까지 상대의 얼굴조차 모르고 결혼했던 그 할아버지, 그래서 연애에 서툴다고만 생각했던 할아버지....

신은 인간의 삶에 잠시 신의 마음을 엿볼 기회를 허락한다.

그것이 사랑의 순간이다. 아낌없이 주고, 또 주고, 자신보다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마음...

사랑의 신호등은 아쉽게도 오래 오래 켜지지는 않는다.

물론 그 사랑의 신호등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과 잘 어울려서 오래오래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삶을 산다해도 그다지 원망스럽진 않다.

여기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오래오래 그 사람의 행복만을 빌면서 살아가는 것도 그러면서 이렇게 한결 같은 한사람을 위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도 신의 마음을 잠시 엿본 증거임을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나미야 할아버지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에 고이 간직한 채,

그렇게 삶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냈다.

그리고 아키코...

나미야 할아버지의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 아키코, 그 사람은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받은 유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로 '환광원'이라는 아동보호시설을 만들어서 자신의 평생을 바친다.

그렇게 그들은 삶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을 곱게 곱게 승화시켰다.

사랑의 신호등은 꼭 파란불일 필요는 없다.

사랑이 이루어지면 그냥 행복하면 되는 것이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산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행복을 빌어주는 일을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잡화점의 상담편지와 환광원 불우한 고아들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전개된다.

참 기막힌 스토리텔링이 좋았고,

사람을 향한 세상을 향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참 따듯한 시선 때문에 행복했다.



                                                                   
                                                             인천참사랑병원      정신과 전문의 김미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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