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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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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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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참사랑병원

작성일 : 12-09-25 17:20 조회 : 3,923회

본문

 

언제부터인가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명절증후군이란 명절을 맞아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말한다. 최근에는 그 대상이 남편들, 시어머니, 노총각, 노처녀, 미취업자 등으로 확대되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원조 명절증후군의 주체는 ‘며느리’였다.

과거 며느리들에게 ‘시집살이’란 용어가 있었다면, 현대의 며느리들에게 ‘명절증후군’이란
용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요즘 여자들은 과거에 비해 너무 편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시집살이가 없는데도 ‘명절증후군’이니 뭐니 하면서 힘들어 한다고 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 물론 요즘의 며느리들이 과거 우리 어머니세대들이 며느리였던 시절보다 훨씬 시집살이가 덜해진 것도 사실이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가사일이 편해진만큼 며느리들이 해야 할 집안일도 한결 수월해 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현대의 며느리들이 과거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들보다 한결 편안하리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시집살이’ ‘명절증후군’ 등의 용어만 바뀌었지, 며느리란 이름으로 받는 부담과 고통은 그 어떤 시대의 며느리 못지 않게 현대의 우리 며느리들이 힘들게 겪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 요즘의 며느리들, 특히 30~40대의 며느리들이 왜 그렇게 힘든 시댁과의 갈등을 겪고,
그로 인해 즐거운 명절을 두려워하게 되는 걸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시대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한, 둘의 자녀들을 아들, 딸 구분 없이 키워진 가정들이 늘어났고, 그렇게 차별 없이 잘 교육받고 자라서 지금의 30~40대 며느리들이 되었다.

그렇게 잘 키워진 딸들이 사회에서도 남자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사회의 역군으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가정주부로 있다 해도 주부로서의 살림살이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직장 다니는 남편의 일만큼 소중한 일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고를 가진 현대의 며느리들은 시댁에 와서 허드렛일은 왜 자신만 도맡아 해야 하는지, 명절이면 왜 꼭 친정보다 시댁을 먼저 들러야 하는 지에 대해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다. 또한 명절음식을 만들 때 남자들은 거실에서 티비나 보고 있고, 며느리들만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요즘의 며느리들은 육체적인 힘듦보다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차별적인 대우를 며느리란 이름으로 받는 심적인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럼 우리 현명한 며느리세대들은 이 명절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는 나와 시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든 여자들의 문제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또한 그 시대를 살면서 보고, 배운 사고방식인 것이고, 내가 그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또한 지금의 시대를 살면서 보고 배운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며느리니까 당연히 일해야 하는 거고,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오는 것 아니다.’ 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의 말씀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의 삶의 흔적임을 인정하자. 어머니를 바꾸려 하기 보다는 거실에 누워있는 남편을 설득해서 자발적으로 명절 일손을 돕게끔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내 스스로의 죄책감을 조절해야 한다. 사실 매운 시어머니에게서 잔소리 들어서 힘든 것보다는 오히려 내 스스로 지레 눈치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 사고방식은 현대의 사고지만, 내 행동은 우리 어머니의 삶을 따라 배운 대로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사고와 행동의 불일치가 나타난다. 차례를 지내자마자 친정으로 가고 싶은데, 친정 간다고 말하면 너무 빨리 가려 한다고 시어머니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를 미리 걱정하고 말을 못한다. 음식을 만들고 나서 누워서 쉬고 싶은데 누워 있다고 시어머니께 야단들을 까봐 피곤해도 눕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으면서 더욱 피곤해 한다. 미루어 시어머니의 마음을 신경 쓰고,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전통적 며느리관에 내 스스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시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사고의 가치관만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나에게 시어머니가 불만을 가진다면 그건 시어머니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이번 명절엔 좀 더 당당한 며느리가 되어 보자.

시댁을 가기 전에 남편교육부터 열심히 시켜 두자.
시댁에선 남편에게 직접 시키지 못할 테니 미리 알아서 눈치껏 일을 잘 거들어 달라고 말이다.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며 어정쩡하게 있지 말고 눈치 없이 푹 퍼져서 쉬어보자. 어이없어 하는 시어머니의 표정은 무시해 버리라. 그건 말했다시피 시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만약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라면 웃으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어차피 시어머니와 나는 다른 세대의 다른 사고의 사람들이라 절대로 서로 공감할 수 없다.

이제는 시어머니께 사랑 받는 며느리가 되려 하기 보다는,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가 되어 보자. 시댁에서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내가 하고픈 만큼만, 내 성의껏만 열심히 한다면, 나는 아주 기쁘게 명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나는 시어머니를 사랑할 수 있는 며느리가 되지 않을까?


                               
                                                              인천참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미재 진료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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