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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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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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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참사랑병원

작성일 : 13-04-05 12:46 조회 : 4,068회

본문

이야기는 주인공 팻 피플스가 4년 만에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시작한다.

주인공 팻은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있다.
현재 부인 니키와 별거중이지만 곧 재결합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재결합의 날까지 팻은 니키가 좋아할 남자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는 것,

팻은 니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몸무게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멋진 몸매를 보여주기 위해 운동에 집착한다. 그래서 그는 매일 꾸준히 어머니가 만들어준 지하 헬스 실에서 운동하고, 매일 집 앞 공원을 달린다. 또 국어선생님인 니키에게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미국교과서에 실리는 소설을 모두 다 읽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팻의 견해는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팻은 비극으로 끝나는 소설이 어떻게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지 팻의 가치관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느끼는 그에게 해피엔딩이 아닌 소설이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되고, 그런 소설을 니키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의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니키가 좋아할 것 같은, 니키가 하는 생각에 맞는 결정과 행동으로 채우려 노력한다. 니키가 식장에서 밥을 먹고 팁을 후하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4달러의 음식을 먹고, 20달러를 내면서 그 나머지는 모두 팁으로 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식사를 하고도 니키가 좋아할 것이라고 뿌듯해 한다.
니키, 니키, 니키...
그렇다, 그는 니키를 생각하면서 눈을 뜨고, 니키가 좋아할 것 같은 행동만을 하고, 니키가 어떻게 결정할까를 고민하고, 니키와의 재결합의 그 날만을 꿈꾸며 살아간다.
니키와의 행복한 해피엔딩을 믿어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인공 팻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
갑작스런 순간에 폭력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행동이 나온다.
물론 그런 행동은 정신과 입원할 만한 병명을 가진 환자들 모두에게 나오는 공통적 행동에 속한다.
Impulse control의 장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팻은 유독 케니G의 '송버드'음악을 싫어하고 그 음악이 들리거나 그 음악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발작 같은 공격성과 난폭함을 보인다.

뭘까?
정신과 의사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주인공의 병명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2/3까지 읽어 나가도 정확한 병명을 진단할 수가 없다.
조울증도 아니고, 정신분열증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적장애라고 하기엔...
책에서 보여준 그의 과거이력이 애매하다.
적어도 그는 직장생활을 했던 것 같고, 니키라는 여자와 결혼을 했고, 입원하기 전까지 무난하게 결혼생활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니키는 국어 선생님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할 것 같지 않은 인텔리 아닌가?

팻은 정신병원 입원 4년 동안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다.
니키와 왜 헤어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신이 정확히 몇 년을 입원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기억상실장애? 해리장애?
그래, 실제 정신병원에서는 흔치 않은 병명이지만, 병 자체의 드라마틱한 효과 때문에 소설에서는 많이 등장하는 부분기억상실증으로 추정한다.
원인은... 사랑하는 니키와의 이별 때문일까???

그러나 난 팻을 보면서 과거 내가 참 좋아했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옳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화를 나게 하는 사람에게서 화를 참고, 더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팻,
니키가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팻
에밀리가 섹스하자고 유혹해 와도 자신은 니키의 남자, 유부남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짓은 할 수 없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팻.

포레스트 검프
내가 주인공 팻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떠올린 또 다른 사람이다.
IQ75의 지능이지만 맑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포레스트 검프의 사랑과 성공의 이야기,
"I am Forrest, Forrest Gump"
검프의 어머니는 검프에게 가르쳤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그 이름에 누가되지 않을 행동만을 하도록, 어머니의 훌륭한 가르침을 평생 간직하면서 성실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검프, 그리고 한사람을 사랑하는 그 한결 같은 마음, 세상을 살면서 더 많이 알고, 더 똑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검프
 
그저 내 이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행동만을 하고, 사랑하는 그 사람을 언제나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 신념 하나면 훌륭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사람.

그래 맞았다.
내가 팻을 보면서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린 것은 작가가 팻의 병명을 말하지 않았지만, 팻의 증상을 잘 표현하고 기술했던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선천적 지적장애를 가졌다면,
팻 피플스는 '뇌손상에 의한 지적장애' 환자이었던 것이다.
팻은 자신의 집에서 부인 니키가 그녀의 직장동료 필립과 섹스를 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 광경에 분노한 팻은 필립에게 폭행을 가하고, 이에 놀란 니키는 CD 플레이어로 팻의 머리를 친다.
그리고 팻은 머리를 다친 채 쓰러지고, 팻의 머리를 강타하고 내동댕이쳐진 CD플레이어에서는 캐니G의 '송버드'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작가 매튜 퀴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니키와 왜 별거 중에 있는지, 왜 니키와 팻은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 서로 만날 수도 없는지, 물론 또 다른 주인공 에밀리에 대한 사연도 작가는 거의 소설의 마지막에야 알려준다.
남편의 죽음이후 우울증에 빠졌던 에밀리,
우울증 이후 온갖 남자들과 문란한 섹스에 탐닉하고, 직장 남자 동료들을 가리지 않고 섹스의 대상으로 삼다 끝내 직장까지 잘린 에밀리,
에밀리의 사연 또한 불친절한 작가가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책의 막바지까지 알지 못했지만,
그 사연을 알게 되면서 왜 에밀리가, 우울증에 빠져서 세상에 관심이 없던 에밀리가 뜬금없이 한 큐에 팻에게 꽂혀서 팻을 사랑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가게 된다.
물론 처음엔 그저 우울증 여자환자가 다른 정신증 남자환자에게 같은 처지라는 이유로 공감을 느껴서 사랑하게 되는 건가라는 단순한 생각밖에 하지 못했기에 그를 필연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느끼는 독자로서의 '감동'은 훨씬 더 컸다.

정의롭고, 성실한 경찰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었던 에밀리,
그러나 심하게 섹스에 집착하는 남편에게 부담감을 가졌던 에밀리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섹스를 조금만 줄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에밀리의 말에도 남편은 큰 상처를 받는다.
"섹스를 이렇게 많이 하면... 오히려 마법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마법이 사라졌다는 뜻이야?" 에밀리의 남편 토미가 이렇게 물었고, 그것이 토미가 에밀리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되었다. 토미는 그렇게 출근했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에밀리는 상실감과 죄책감에 힘든 나날을 보낸다.
자신이 토미를 아프게 했던 그 마지막 말에 대한 부정과 취소의 방어기제로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섹스에 열중하게 된다.
그렇게 섹스에 열중하면서 남편에게 용서를 구한다. 섹스가 지겨운 게 아니었다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 섹스를 하겠다고,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한다고...

그리고 여느 때처럼 에밀리는 팻에게도 그렇게 접근한다.
아주 당연하게 응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섹스를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팻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단칼에 에밀리의 제안을 거절한다.
뜻밖에 반응에 당황하는 에밀리, 물론 팻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지적장애를 가진, 아주 단순하고, 융통성 없는 사고를 가졌던 팻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세상에 어떤 남자가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유혹해 오는 데 자신은 유부남이라며 뿌리칠 수 있을까?
에밀리가 팻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였다.
그렇게 에밀리는 뜻밖에 거절에 충격을 먹었고, 팻과의 순수한 저녁식사와 데이트를 통해서 조금씩 변해가게 된다. 에밀리에게 들어 온 팻이라는 또 다른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남편을 잃은 충격과 죄책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정신과 의사로서 볼 때, 지적장애들이 모두 팻이나 포레스트 검프처럼 성실하고, 순수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물론 팻 피플스나 포레스트 검프 같은 멋진 캐릭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명확히 해두고 싶다.

지적장애의 특징은 단순하고, 경직된 사고를 하고, 융통성이 없다. 또한 순간적이고 충동적이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반응이 오면 통제되지 않는 화를 내고, 난폭해 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적장애 환자들에게는 더욱 따듯한 양육과 지지적인 관심이 중요하다.
팻에게도 검프에게토 그런 따듯하고, 지지적인 엄마가 있었다.

그러나 대개의 지적장애 환자들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이고, 화를 잘내고,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도 많이한다. 대개의 장애환자들은 사랑을 받지 못한다.
왕따를 당하고, 버림받고, 무시당한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잘 내고,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자신이 혼자 독립해서 살기엔 세상이 너무 무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분노하고 폭발한다.
의지해야만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동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거짓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들의 지적수준에서는 내일 들킬 거짓말도 당장이 모면을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다. 그래서 주위 자신을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고, 또 그들을 떠나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번 상처를 받고, 점점 더 난폭해지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려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되기에 더욱 공격적이고 의심스러워 지게 된다.

지적장애 환자들의 특징은 자신이 가진 한 두가지 신념을 끝까지 고수한다. 다른 지식을 담기엔 그들의 지적수준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배운 단순하고, 가장 도덕적인 신념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옳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친절한 사람이 되라'는 신념으로 살고 있는 팻처럼,

실버라이닝
(Silver lining: 구름에 가장자리에서 퍼져 나오는 빛)
주인공 팻은 긍정적인 사람이고, 항상 해피엔딩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니키의 불륜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니키를 찾아 간다.
멀리서 니키와 니키의 새로운 남편, 그리고 그들의 두 아이가 눈싸움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 "그리고 나는 메릴랜드에서 본 그 장면을 내 옛날 인생의 해피엔딩으로 기억할 거예요. 새가족과 함께 눈싸움을 하고 있는 니키, 정말 행복해 보이고, 새남편과 두아도..."
그렇게 팻은 해피엔딩을 새롭게 정의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반전이고 감동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상태로 존재하길 바라는 것,
이것만큼 더 큰 해피엔딩이 또 있을까?

에밀리는 팻에게 '천체 관측자의 구름도표'라는 책을 선물한다.
이것이 실버라이닝 플레이 북인가?
에밀리는 팻이 함께 달릴 때 항상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을 기억하고, 그래서 구름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사랑하니까... 그의 무심코 하는 습관과 작은 행동에도 관심이 가는 것이겠지.

이제 팻이 치유 받을 차례이다.
에밀리가 팻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해 냈듯이...
에밀리의 순수하고, 진실한 팻을 향한 사랑을 통해서 팻은 분멸 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것이다.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마침내 끝나고 니키가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이제 내 품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믿기 위해서 지독히 괴로워하고 절망했던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품에 있는 여인은 내게<천체 관측자의 구름도표>를 준 여인이고, 내 모든 비밀을 아는 여인이고, 내 정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아는 여인이고, 내가 얼마나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는 여인이고, 그런데도 내품에 안기는 여인이다.'
그래서 나는 티파니를 좀 더 가깝게 끌어당긴 다음 완벽하게 손질된 그녀의 눈썹 사이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나도 당신이 필요해요"
 

                                                                       인천참사랑병원 정신과전문의 김미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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